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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세계문화협의회/2018년 행사

2018년 세번째 행사: 자료전시회

2018년 8월 4일-30일


<전쟁과 분쟁지구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란 이름으로 자료 전시회가 있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 기림비와 소녀상 사진 30여 점 및 필리핀 할머니의 그림일기 23점이 전시되었다. 


기림비와 소녀상 사진전에는 난징에 있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 자료관 앞에 있는 조각, 중국 상하이 교육대학에 있는 한중 소녀상 사진에서 시작하여, 미국, 일본, 필리핀, 한국에 있는 작품들의 사진이 소개되었다. 


필리핀 할머니의 그림일기는 그림일기마다 마르틴 슈미트 마긴 박사가 번역한 독일어 텍스트가 첨부되었다. 관람자들은 꼼꼼히 읽은 후 이 문제가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4일에 열린 개막식에서는 여성박물관 회원, 현지인 아티스트, 본 한인회 대표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독한협회 회장과 회원들이 30도 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전시회는 지역신문 세 곳에 상세히 보도되었다. 


다음은 전시되 사진 중 일부.




오키나와의 아리랑비 사진 (위안부를 기억하는 미야자키 모임 제공) 은 일본에 있는 기림비란 점에서 관람객들게에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위안부' 문제를 오로지 한일 대립 관계로 생각하려는 타성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일본인이라 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한국인이라 하여 기억을 강조하고 또 유럽인이라 하여 전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전세계에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기림비 사진전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인되었다. 궁극적으로 이 '위안부' 주제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 즉 종국에 가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양심과 역사인식의 문제, 평화에 대한 친화성 등의 다양한 화두로 분화되어 나가는, 끝없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김서경 김운성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 최초로 선 곳이 글렌데일이라면, 이곳 뉴저지 팰레이즈 파크에

있는 일본군성노예체제 기림비는 세계최초의 기림동판이다. 2010년 10월 23일에 세워졌다. 이는  

미국 내 '위안부' 진실전하기 운동 (CW Movement)는 2007년 7월에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121조가 

통과된 후 3년만에 이루어진 성과이다. 현재 미국에는 공공장소에 서 있는 이러한 기림비가 열 점에 

달한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오면 맨먼저 보이는 것이 난징 위안소 자리에 세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기념관이었다. 북한의 박영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오셔서 자신이 계시던 곳이라고 증언하시고 가셨다는 곳이다. 방대한 진술 자료들이 있는 이 자료관 앞에 있는 작품은 바로 우리가 익히 사진을 통해 알고 있는 박영심 할머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진 제공: 가주한미포럼 김현정 대표) 그 다음 사진은 상해 교육대학교에 자리한 한중 소녀상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한 시퀀스로 설치했다. (사진 제공: 윤명숙, 김현정, 김서경)





6미터 너비의 이 벽에는 미국 사진을 걸었다. 유니온 시티와 2018년 여름에 고등학생들이 설치한 포트리의 기림비는 다음 이동 전시에서 추가될 것이다. 애틀랜타 사진도 건립 1주년을 기념하고 조성된 공원이 있는 사진을 가주한미포럼에서 다음 전시를 위해 보완해 주었다.

왼쪽 위에서 두번째 사진, 가주한미포럼의 김현정 대표와 에드 로이스 미국 연방 외무위원장의 추모제 모습이 많이 관심을 끌었다.. 오른쪽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기림비에 관해서는 공공기념물 인정과정과 관련한 일본 단체의 연대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해 주었다. 다음 전시 경우는 2018년 10월 초 오사카 시장이 이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다 관철되지 않자 샌프란시스코에 실제로 자매결연을 끊은 이야기를 첨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측에서 소녀상의 설치를 막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소녀상으로 인해서 일본이 학생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거나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국민이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는 독일인 이웃들의 반응을 보면 일반 일본국민들이 놀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역사수정주의 혹은 역사왜곡을 통해서 있었던 사실을 가리려고 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이다.